안녕하세요.
대구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김OO 개인파산 면책 결정문 올립니다.
대구에서 개인회생 개인파산면책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 개인파산면책 내용 ]
이름 : 김OO
연령대 : 50대
직업 : 일용직
월수입 : 1,000,000원
가족관계 : 배우자와 어머니 및 자녀 1명
부양가족 : 없음
채무발생원인 :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저는 **‘내 손으로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퀵서비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가 1999년. 지금처럼 배달 플랫폼이 많던 시절이 아니었죠.
경험도 없고, 시장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시작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단순한 믿음 하나로 부딪혔습니다.
7~8명의 기사들과 함께한 험난한 운영
처음엔 저 포함 7~8명이 함께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기사분들의 신분도 불분명했고, 거주지도 일정치 않아
하루에도 인력이 바뀌는 일이 잦았습니다.
매일 누군가는 그만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 들어왔습니다.
고정 인원이 없다보니 일의 연속성이 끊기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엔 일 자체가 멈춰버렸죠.
적자가 쌓이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식비를 지원하고,
오토바이가 없는 사람에겐 오토바이까지 사주며
운영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오토바이를 들고 도망치는 사람,
“가불 좀 해달라” 해놓고 다음날 잠적하는 사람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남은 건 신용카드 빚, 카드론, 신용대출뿐이었습니다.
적자의 늪, 그리고 폐업의 결단
사업은 마음처럼 풀리지 않았고,
매일이 적자였습니다.
“이번 달까지만 버텨보자”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다가
결국 2002년, 폐업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졌던 빚이 계속 발목을 잡았고,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긴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아이의 학비, 생활비, 병원비까지…
수입은 빠듯했고, 빚은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갚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불어난 이자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으로 나가고,
다음 달엔 또 부족해서 대출을 받고,
그렇게 돌고 도는 악순환 속에서
저는 점점 더 지쳐갔습니다.
무너진 마음 위에 다시 세운 결심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나 혼자서는 안 되겠다.”
더 이상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남은 인생은 채무가 아닌 새 출발로 채워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파산면책 신청을 결심했습니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용기의 선언이었습니다.
채무금액 : 78,356,234 원
전액 파산 면책 탕감
대구지방법원
결정사건
20OO하면 2OOOOOO 면책
20OO하단 2OOOOOO 파산선고
채무자
김OO (7OOOOO-OOOOOOO)
대구 OO OOOOO OO (OOO)
송달장소 대구 수성구 상록로2길 76, 2층(범어동)
대리인 법무사 김재현
주문
채권자를 파산 면책한다.
이유
이 사건 기록 및 이법원의 채무자에 대한 심문결과에 의하면, 채무자에게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현 법률 제 564조 제 1항에서 정한 면책불허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OO. OO. OO. OO
판사
이O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