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파산 결정문 올립니다.
대구에서 개인파산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https://대구개인회생.net
상담센터 : 1844-0755

[ 개인파산 내용 ]
이름 : 김OO
연령대 : 60대 초반
직업 : 건설 현장 일용직 (전 제조공장 운영)
월수입 : 2,200,000원
가족관계 : 배우자와 2인 가구
부양가족 : 배우자
채무금액 : 340,000,000원
주요원인 : 생산공장 폐업 시 발생한 사업자금 채무 + 직원 급여 보전 카드론 누적
처리기간 : 신청부터 면책결정까지 약 9개월
처리결과 : 전액 면책 (파산관재인 선임)
특이사항 : 재산 은닉 정황 없음 확인, 폐업 직전 자금 흐름은 직원 월급·거래처 결제 등 정상 용도로 입증
채무발생원인 :
직원 30명 사장에서 건설 일용직으로, 3억 4천만 원 빚을 정리하고 다시 선 60대의 기록
한때는 사장님 소리를 듣던 시절
저는 1960년대 초반,
경상북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 무렵 대구로 올라와
공장 노동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30대 후반에 큰 결심을 했습니다.
작은 제조 공장을 차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직원 세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출근해 기계를 직접 돌리고,
저녁에는 거래처를 만나러 다녔습니다.
10년 가까이 가게가 자리를 잡으며
직원이 서른 명까지 늘었습니다.
연 매출은 한때 20억 원대를 찍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명절에 직원들에게 떡 한 박스씩 돌리는
그런 보람으로 살았습니다.
거래처가 끊긴 그 날
문제가 시작된 건
2010년대 후반,
저희 공장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대형 거래처가 갑작스럽게 거래를 끊은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쪽 본사가 해외 공장으로 물량을 옮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몇 달은
“새 거래처만 잡으면 회복된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영업도 다녔고,
은행에서 운영자금도 빌렸습니다.
그러나 한 번 끊긴 매출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월말마다 직원 월급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계산했고,
모자라는 돈은 제 명의 카드론으로 막았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장의 카드,
나중에는 다섯 장의 카드를
돌려막기로 사용했습니다.
폐업, 그리고 남은 빚
버티고 버티다
2020년 초,
결국 공장 문을 닫았습니다.
직원 서른 명에게
마지막 월급과 퇴직금을 정산해 주는 데
모든 자금을 썼습니다.
폐업하던 날
공장 안에서 혼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기계 한 대 한 대,
거기에 들인 십수 년의 시간이
한 번에 끝났습니다.
폐업 시점의 잔여 채무는
약 3억 원이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제 명의로 받은 카드론과 신용대출이었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빌린 차용금이었습니다.
법인 채무 일부는
연대보증으로 제 개인이 떠안은 상태였습니다.
폐업 후 5년 — 일용직으로 버틴 시간
폐업 다음 날부터
저는 건설 현장에 나갔습니다.
60대 가까운 나이에
처음 잡아 보는 안전모와 작업복이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인력시장에서 일을 받고,
하루 종일 시멘트와 철근을 나르고,
저녁에는 진통제를 먹고 잠들었습니다.
월 수입은 평균 220만 원.
아내와 둘이 사는 생활비를 빼면
빚 이자도 다 갚지 못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자가 빚을 부르고,
빚이 또 이자를 불렀습니다.
폐업 시점 3억 원이었던 채무가
5년 뒤에는 3억 4천만 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매일 12시간씩 일해도
빚이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자식 얼굴 보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빚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아빠가 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추석이나 설에
자식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저는 일부러 일을 잡아 일하러 나갔습니다.
손주들이 와도
얼굴을 마주하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추심 전화는 아내가 받을 때마다
저보다 더 마음 졸였고,
이 사실을 자식들이 알게 될까 봐
저는 휴대폰을 꺼 두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런 날이
5년이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문을 두드린 날
지인의 권유로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3억 4천이나 되는 빚도
정리할 수 있습니까?
60대인데 너무 늦은 거 아닐까요?”
법무사님은 차분히 답해 주셨습니다.
“늦지 않으셨습니다.
나이는 오히려 면책에 유리한 조건이 됩니다.
한 번 직접 오셔서 자료를 가져오십시오.”
며칠 후 저는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은
서류 뭉치를 들고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처음 사무실에 앉아
법무사님 앞에서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떼었습니다.
“제가 한때는 사장님 소리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눈물이 났습니다.
5년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회생이 아니라 파산을 선택한 이유
법무사님은 자료를 꼼꼼히 살피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 사건은
개인회생이 아니라 개인파산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파산”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법무사님은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첫째, 변제 능력 문제.
월 220만 원 수입에서
대구 2인 가구 최저생계비를 공제하면
남는 금액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회생을 신청해도
인가가 어렵거나,
인가 후 변제 도중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면책 사유의 명확성.
저의 채무 발생 원인은
도박이나 과소비가 아니라
명백한 사업 실패였습니다.
폐업 직전까지
저 자신의 카드로
직원 월급을 챙긴 흔적이
자료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런 패턴을 보고
면책을 적극적으로 허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법무사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파산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파산관재인 조사 — 가장 긴장된 시간
신청 후 약 2개월 만에
대구지방법원에서 파산선고 결정이 났습니다.
채무액이 3억 원이 넘었기 때문에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었습니다.
파산관재인 조사 단계에서
가장 민감했던 부분은
폐업 직전 1년간의 자금 흐름이었습니다.
거액의 출금 내역이 있으면
재산 은닉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법무사님은 사전에
이 부분을 철저히 준비시키셨습니다.
저는 폐업 직전 1년간의
세금계산서,
직원 급여 대장,
4대 보험 납부 내역,
거래처 결제 내역,
임대차계약서까지
빠짐없이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모든 출금이
직원 월급, 거래처 결제, 임대료 같은
정상적인 용도였음을
서류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관재인은 최종적으로
“재산 은닉 정황 없음”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면책 결정문이 도착하던 날
신청 후 약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책허가 결정문이 도착했습니다.
총 채무 3억 4천만 원,
전액 면책.
봉투를 뜯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5년 동안
매일 12시간씩 일하며
이자도 못 따라잡던 그 빚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법무사님 앞에서 또 한 번 울었습니다.
“이제는 자식들 얼굴 보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말이 처음으로
입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시작한 일상
저는 지금도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합니다.
다만 마음의 무게가 완전히 다릅니다.
전과 같은 220만 원 수입이지만
이제는 그 돈으로
아내와 두 분이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자에 쫓기지 않으니
잠도 잘 옵니다.
추심 전화에 가슴이 철렁할 일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집에 오너라.”
5년 만에 처음으로
손주를 안아 봤습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폐업 자영업자분들께
저처럼 한때는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폐업으로 빚을 떠안고
일용직이나 막일을 하시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분들께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폐업 후 너무 오래 혼자 버티지 마세요.
저는 5년을 버티는 동안
이자만 4천만 원이 늘었습니다.
폐업 후 2~3년 안에 정리하시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둘째,
사업 실패는 죄가 아닙니다.
국내 자영업자 폐업률이 매년 10%대를 넘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법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셋째,
직원들에게 마지막까지 월급을 챙겨 준 흔적은
면책에 매우 유리한 사유입니다.
급여대장과 4대 보험 납부 내역을 꼭 보관해 두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무료 상담은
저 같은 60대 일용직도
따뜻하게 받아주십니다.
부디 혼자 끙끙대지 마시고
한 번만 전화해 보십시오.
저는 그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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