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회생 후기 — 6년 운영 후 폐업 7,200만 원 회생 9개월

[ 대구개인회생 후기 ] 미용사 (40대 후반, 미용실 6년 운영 후 폐업·디자이너 위촉직) / 월평균수입 290만 / 채무금액 : 원금 7천200만 / 청산가치 : 8백5십 / 변제금액 : 4천140만 / 변제기간 : 60개월 / 변제율 : 원금의 57.5% 상당액

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회생 후기 올립니다.
대구에서 미용실·소상공인 폐업 후 개인회생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미용실 회생 후기 — 6년 운영 후 폐업 7,200만 원 회생 9개월
미용실 회생 후기 — 6년 운영 후 폐업 7,200만 원 회생 9개월

[ 개인회생 내용 ]


이름 : 임OO
연령대 : 40대 후반 (47세)
직업 : 미용실 디자이너 (전 미용실 6년 운영 후 폐업)
월수입 : 2,900,000원 (위촉직 기본 + 매출 인센티브)
가족관계 : 자녀 1명과 2인 가구 (이혼·한부모)
부양가족 : 자녀 1명 (고등학교 2학년)

채무금액 : 원금 72,000,000원
청산가치 : 8,500,000원
변제금액 : 41,400,000원
월변제금(가용소득) : 690,000원
변제기간 : 60개월
변제율 : 원금의 57.5% 상당액
특이사항 : 미용실 6년 운영 후 코로나·임대료 인상 누적으로 폐업, 운영자금 사업자대출(소상공인 정책자금) 3,200만 + 본인 카드·캐피탈 4,000만, 폐업 후 다른 미용실 디자이너 위촉직 전환, 한부모가정증명서·자녀 양육비 미수령 진술서 입증, 매출장부 24개월·세금계산서 8분기 입증, 보정명령 3차 후 인가



후기 :

셔터를 내리던 그 봄 — 47세 미용실 1인 사장의 폐업·7,200만 원 회생 9개월 후기

들어가며 — 미용실 셔터를 내리던 그 봄

저는 40대 후반의 미용실 디자이너입니다.

대구의 한 미용실에서 위촉직 디자이너로 일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 1년 전까지 저는 본인 명의의 작은 미용실을 6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동네 골목 안쪽의 8평짜리 1인 미용실이었습니다.

32세에 처음 가게를 열어 6년 동안 단골 손님 약 240분을 만들었습니다.

작년 봄의 어느 평일 저녁에 본인 미용실의 셔터를 마지막으로 내렸습니다.

셔터 자물쇠를 채우고 가게 출입문 앞에 5분쯤 서 있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이 글은 그 셔터를 내린 미용실 1인 사장이 다른 미용실의 위촉직 디자이너로 다시 가위를 들면서 본인 명의 채무 7,200만 원을 5년 변제 계획으로 정리한 9개월의 기록입니다.

특히 6년 운영 후 폐업 결정에서 본인이 어떤 시점에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를 정직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미용실·1인 자영업자 여성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미용실 6년의 첫 페이지 — 32세에 시작한 본인 가게

저는 미용학원 졸업 후 다른 미용실에서 9년을 보조·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32세 봄에 본인 명의의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대구 외곽 동네의 골목 안쪽에 8평짜리 작은 점포였습니다.

점포 임대 보증금 1,500만 원과 권리금 800만 원, 인테리어·미용 기구 약 2,000만 원으로 총 4,300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본인 적금 약 1,800만 원과 친정 부모님의 도움 1,000만 원, 본인 신용대출 1,500만 원으로 자금을 만들었습니다.

미용실 개업 첫 달의 매출이 약 280만 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달부터 동네 단골이 천천히 늘었고, 1년 차 봄에는 월 매출이 약 450만 원이 되었습니다.

월 매출 450만 원에서 임대료 95만 원, 미용 재료비 80만 원, 공과금·세금 25만 원이 빠지면 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약 250만 원이었습니다.

미용실 사장이라는 직업은 본인 시간을 본인이 정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특히 자녀가 어렸을 때 등하원과 학원 시간을 맞춰 가게 운영 시간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미용실 운영 3년 차에 본인은 이혼을 했고, 자녀의 양육을 본인이 맡았습니다.

미용실 사장 직업이 한부모 양육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그 시점에 명확해졌습니다.




첫 위기 — 임대료 인상의 그 가을

미용실 운영 4년 차의 가을이었습니다.

임대인이 갱신 시점에 임대료를 월 95만 원에서 130만 원으로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변 점포 시세가 그 수준이라는 설명을 받았습니다.

월 임대료 35만 원 인상이라는 숫자가 본인 가계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매월 정산할 때 명확해졌습니다.

월 매출 450만 원에서 임대료 130만 + 재료비 80만 + 공과금·세금 25만 원 = 235만 원이 빠지고 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약 215만 원이 되었습니다.

2인 가구 생활비 약 180만 원과 자녀 학원비 약 50만 원을 빼면 본인 손에 남는 돈이 음수였습니다.

본인은 임대료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점포를 찾을지 고민했지만, 단골 손님 240분이 6년 동안 이 골목으로 익숙해진 점을 고려해 임대료 인상에 동의했습니다.

그 결정이 본인 명의 채무 누적의 첫 시점이었습니다.

월 부족 약 15만 원을 본인 명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15만 원이 두 달, 세 달 쌓이면서 카드 한도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폐업 자영업자 여성의 첫 상담의 길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폐업 자영업자 여성의 첫 상담의 길



코로나의 시작 — 단골 손님이 못 오는 시간

미용실 운영 5년 차 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용실 업종은 1차 셧다운 대상은 아니었지만, 손님 분들이 외출 자체를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방문이 줄었습니다.

월 매출이 평소 450만 원에서 280만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본인이 단골 손님 240분에게 일일이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방역 안내를 했지만, 매출 회복은 더뎠습니다.

월 매출 280만 원에서 임대료 130만 + 재료비 50만 + 공과금·세금 25만 원 = 205만 원이 빠지고 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약 75만 원이었습니다.

2인 가구 생활비 180만 원과 자녀 학원비 50만 원에 비해 매월 약 155만 원의 부족이 발생했습니다.

그해 가을에 본인은 소상공인 정책자금 사업자대출 2,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낮은 금리(연 2%대)였고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 상품이었습니다.

그 2,500만 원으로 본인 카드 잔액 일부를 갚고 미용실 운영 자금으로 약 1,500만 원을 보관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코로나 2차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 미용실 영업 시간이 단축되면서 추가 사업자대출 700만 원을 받았습니다.

6년 차 가을 시점에 본인 사업자대출 누적이 3,200만 원이 되었습니다.




미용 도구의 누적 — 본인 카드와 자가용

미용실 운영 5년 차 가을부터 6년 차 봄까지 본인은 미용 도구·재료를 본인 카드로 결제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월 미용 재료비가 평소 80만 원에서 줄여서 50만 원이 되었지만, 그 50만 원도 본인 카드로 결제했고 매월 결제일에 잔액이 부족하면 다른 카드로 돌려막았습니다.

본인 자가용도 미용실 출퇴근과 단골 손님 출장 미용에 사용되었습니다.

자가용 정비비와 디젤 유류비를 본인 카드로 결제하면서 카드 한도가 추가로 빠졌습니다.

6년 차 봄에 본인 명의 신용카드 3장의 한도가 모두 막혔고, 캐피탈 한 곳에서 한도 500만 원의 신용대출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캐피탈 500만 원의 매월 이자가 약 14만 원이었습니다.

월 부족액에 14만 원이 추가되어 약 169만 원이 되었고, 그 부족액을 또 다른 카드 현금서비스로 메웠습니다.

6년 차 봄 시점에 본인 명의 카드·캐피탈 누적이 4,000만 원, 사업자대출 누적이 3,200만 원, 총 7,200만 원이었습니다.

본인 한 사람의 미용실 매출만으로는 산수가 더 이상 안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12주의 자료 정리 — 미용실 매출장부 24개월·세금계산서의 무게
12주의 자료 정리 — 미용실 매출장부 24개월·세금계산서의 무게



폐업 결심 — 셔터 내리던 그 봄

작년 봄 어느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본인 미용실의 6년치 매출장부와 카드 명세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달 매출 예상이 280만 원이었고, 임대료 130만·재료비 50만·공과금·세금 25만·매월 사업자대출 이자 약 25만·매월 카드 이자 약 60만 = 합계 290만 원이 빠질 예정이었습니다.

월 적자 약 10만 원이 누적되면 본인 카드 잔여 한도가 한 달 안에 0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본인 채무가 7,200만 원이었습니다.

매월 채무 이자만 약 85만 원이 빠져나가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에 처음으로 “폐업”이라는 단어를 본인 입으로 말했습니다.

“폐업하고 다른 미용실 디자이너로 전환하자.”

본인 미용실의 단골 손님 240분에게 가장 미안한 결정이었지만, 본인이 6년 동안 본인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본인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임대인에게 전화해 5월 말까지 보증금 정산 후 가게를 비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5월 마지막 영업일에 단골 손님 12분이 오셨고, 저는 한 분 한 분께 다른 미용실로 옮긴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지막 컷을 해드렸습니다.

그날 저녁 셔터를 마지막으로 내릴 때 셔터 자물쇠가 평소보다 무거웠습니다.

6년의 마지막 페이지였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첫 상담의 한 마디

폐업 신고를 마친 다음 달에 본인은 다른 미용실에서 위촉직 디자이너 자리를 구했습니다.

본인 6년 운영 경력과 단골 손님 약 240분 중 약 80분이 새 미용실로 이동해 주신 점이 위촉직 채용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위촉직 첫 달 정산이 약 280만 원이었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약 290만 원으로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인 명의 채무 7,200만 원의 매월 이자 약 85만 원은 그대로 빠져나갔습니다.

폐업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본인은 인터넷에서 “미용실 폐업 개인회생”이라는 검색어를 처음 검색했습니다.

대구에서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블로그를 찾았고, 미용실·소상공인 폐업 후 회생 사례가 두 편 있었습니다.

특히 사업자대출 보증기관 대위변제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명확했습니다.

아침 아홉 시 정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으신 분이 “선생님, 폐업 신고는 마치셨어요?”라고 첫 마디를 했을 때, 사실 거기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상담은 일주일 뒤 토요일 오후로 잡혔습니다.

미용실 영업이 토요일 저녁까지라 오후 일찍이 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상담 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저는 본인 미용실의 폐업증명원과 6년치 매출장부 묶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재현 법무사님이 상담실로 들어오시며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폐업 신고 마치셨고 새 미용실 위촉직으로 전환하셨네요. 사업자대출 보증은 보증기관 보증부지요?”였습니다.

“네,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였습니다.”

“보증기관이 이미 대위변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자대출은 회생 채권으로 편입되어 본인 명의 카드 채무와 함께 처리됩니다.”

본인이 가장 두려워했던 사업자대출 3,200만 원의 구조가 그 자리에서 명확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받은 질문이 더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혹시 폐업 직전에 미용 도구나 가게 물품을 본인 외 다른 명의로 옮기신 적 있으세요?”

저는 본인 미용 기구 일부를 친정 어머니께 보관용으로 맡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괜찮아요, 보관 목적이 명확하고 처분이 아닌 경우는 진술서에 정확히 적어두면 문제 안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한 시간의 상담이 끝나기 전에 사건 위임을 결정했고, 그날부터 9개월의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료 정리 12주와 보정명령 3번 — 미용실 자영업자 사건의 디테일

자료 정리에 정확히 12주가 걸렸습니다.

미용실 폐업 회생 사건은 본인 자료 외에 미용실 6년 운영 자료도 함께 정리해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요구한 자료 목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본인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본인 임대차계약서 사본, 본인 한부모가정증명서.

미용실 사업자등록증, 폐업증명원, 점포 임대차계약서, 보증금 정산 내역.

미용실 매출장부 24개월치 (월별 매출·재료비·임대료·공과금 내역).

부가가치세 신고서 8분기치, 종합소득세 신고서 2년치.

사업자대출 2건의 대출약정서·보증약정서 사본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부).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구상권 통지서.

본인 명의 신용카드 3사 24개월치 명세서, 캐피탈 1곳의 대출 계약서·24개월치 거래내역.

폐업 후 새 미용실 위촉직 정산서 6개월치.

자녀 양육비 지급 약정 내역과 양육비 미수령 진술서.

미용 도구 친정 보관 관련 진술서.

12주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6년치 매출장부와 미용실 폐업증명원을 다시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폐업 후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 서류들을 다시 정리하는 것은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신청은 작년 1월 중순에 전자소송 시스템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접수 후 약 3주 만에 첫 번째 보정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세 번의 보정명령에서 요구된 자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차: 미용실 6년 운영 중 본인 카드·자가용·사업자대출 자금 흐름 매칭표.

2차: 폐업 직전 미용 도구 친정 보관 사실 소명서·도구 목록·가치 평가.

3차: 사업자대출 2건의 보증기관 대위변제 시점과 구상금 명세 확인서.

세 번째 보정명령까지 약 7주가 걸렸습니다.

각 보정명령마다 자료 준비, 사무실 검토, 제출까지 1~2주가 소요됐습니다.

사무실에서 “미용실·소상공인 폐업 사건은 폐업증명원과 매출장부,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 3종이 핵심입니다”라고 안내해 주셨고, 그 3종이 명확히 정리되면서 인가가 안정적으로 나왔습니다.




인가결정 봉투 — 그리고 매월 5일

세 번째 보정명령에 대한 답변이 제출된 후 약 4주 만에 개시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본인 새 거주지 우편함에서 그 봉투를 열어보던 그날 저녁의 손 떨림을 기억합니다.

“이 사건을 개인회생절차로 개시한다”는 문장을 봤을 때, 미용실 6년의 마지막 페이지부터 1년 4개월의 무게가 처음으로 의미 있는 결과로 모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시결정 이후 일상에서 즉시 바뀐 점이 있었습니다.

보증기관과 카드사·캐피탈에서 매일 7~10통씩 오던 추심 전화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본인 새 미용실 위촉직 정산금에 대한 가압류 예고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인 자가용에 대한 가압류 예고 등기 우편도 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새 미용실에서 가위를 들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손님 컷 도중에도 머릿속에 다음 결제일과 잔여 한도 계산이 반복되었는데, 개시결정 이후로는 그 계산이 멈췄습니다.

채권자 집회는 개시결정 약 6주 후로 잡혔고, 김재현 법무사님이 대리 출석해 주셨습니다.

채권자 집회 후 약 7주가 지난 시점에 변제계획 인가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인가결정문에는 총 채무 7,200만 원, 청산가치 850만 원, 총 변제액 4,140만 원, 월 변제금 69만 원, 변제 기간 60개월, 변제율 57.5%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약 7,200만 원의 채무 중에 약 4,140만 원만 5년간 갚으면 나머지가 탕감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음 달 5일부터 회생위원 지정 계좌로 월 69만 원씩 입금이 시작된다는 안내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인가결정문 채권자 목록에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이 사업자대출 3,200만 원의 채권자로 정상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본인이 6년 동안 운영한 미용실의 마지막 페이지가 회생 절차의 공식 문서에 한 줄로 정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가결정의 그날 — 7,200만 채무가 4,140만 변제로
인가결정의 그날 — 7,200만 채무가 4,140만 변제로



지금, 인가 3개월차의 봄

인가결정 후 3개월째인 지금, 매월 5일에 회생위원 계좌로 69만 원을 입금하고 있습니다.

카드 결제가 모두 정지되어 모든 소비를 체크카드 또는 현금으로 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두 달이 지나니 오히려 가계 관리가 수월해졌습니다.

월 69만 원 변제 후 남는 돈으로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처음으로 비상금 7만 원을 별도 통장에 적립했습니다.

7만 원이지만 본인에게는 미용실 폐업 후 1년 4개월 만에 처음 본 진짜 잔여액이었습니다.

새 미용실 위촉직 정산은 매월 약 290만 원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단골 손님 약 80분이 본인 새 미용실로 옮겨 오셨고, 새 손님도 천천히 늘고 있습니다.

본인 새 미용실의 1호점 사장님이 본인 회생 진행 상황을 알고 계시고, 정산금에 대한 회생위원 자동이체를 협조해 주셨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본인이 다시 가위를 들 때 6년 본인 미용실 시기의 그 자유로움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인 가게가 아닌 다른 미용실에서 일하는 위촉직 디자이너의 자리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가위를 들고 손님 머리를 자르는 그 행위 자체는 6년 동안 본인이 가장 사랑한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가 어느 일요일 저녁에 “엄마 요즘 표정이 편해 보여”라고 했을 때, 그게 9개월의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인가 3개월차의 봄 — 새로운 미용실에서 다시 가위를 들고
인가 3개월차의 봄 — 새로운 미용실에서 다시 가위를 들고



같은 자리에 계신 1인 자영업자 여성 분들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 중에 미용실·네일샵·카페·소형 학원·공방 같은 1인 또는 소형 자영업을 운영하시는 40대·50대 여성 분이 있으실 겁니다.

특히 한부모로 자녀를 양육하시면서 본인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께 이 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은 32세에 본인 미용실을 시작했고, 35세에 이혼해 자녀 양육을 본인이 맡았습니다.

미용실 사장이라는 직업이 한부모 양육에 가장 잘 맞는 직업이라는 판단으로 6년을 운영했습니다.

그 6년 동안 매월의 가계 결정과 미용실 운영 결정을 본인 혼자 내려왔습니다.

코로나와 임대료 인상이 본인 가게에 가져온 매출 감소를 본인 카드와 사업자대출로 1년 반 동안 메웠습니다.

그 결정이 본인이 6년 동안 운영한 본인 가게를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 명의 채무 7,200만 원이 되어 폐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본인이 1인 또는 소형 자영업 여성 사장이시고 12개월 평균 가계가 적자라는 신호가 보이신다면, 그 시점이 이미 위험 신호입니다.

특히 본인 가게를 6년 동안 운영하시면서 가게가 본인의 정체성이 되신 분일수록 폐업 결정이 어렵습니다.

본인도 5년 차 가을부터 폐업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단골 손님 240분과 6년의 시간이 그 결정을 1년 이상 미루게 했습니다.

폐업이 패배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결정이라는 것을 저는 셔터를 내리고 새 미용실에서 가위를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폐업 후 같은 업종의 위촉직 디자이너로 전환하시면 사업자 시기의 매출 변동성과 다른 안정적 소득이 만들어집니다.

그 안정적 소득으로 회생 신청이 가능하고, 사업자 시기 누적된 채무를 60개월 변제 계획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영업자가 받은 사업자대출은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기술보증기금)의 대위변제 후 회생 채권으로 편입됩니다.

“사업자대출은 회생이 안 된다”는 인터넷의 흔한 오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대구에서 미용실·소상공인 폐업 후 회생을 고민하고 계신 40대·50대 여성 자영업자 분들께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무료 상담은 부담 없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폐업증명원과 6년치 매출장부, 사업자대출 약정서, 본인 카드 명세서만 가지고 오시면 한 번의 상담으로 본인 사건의 80% 이상이 확인됩니다.

저처럼 32세에 본인 미용실을 시작해 6년을 운영하고 폐업한 사람이 7,200만 원의 빚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가위를 들 수 있게 된 것은 그날 일요일 새벽의 결심 덕분이었습니다.

5년 후 변제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한 번 이 사무실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겠다고 김재현 법무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매월 5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입금하는 것이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책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구 개인회생파산 전문 김재현 법무사 무료상담센터 1844-0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