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회생 후기 올립니다.
대구에서 가족 의료비·자녀 학자금 부담으로 개인회생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https://대구개인회생.net
상담센터 : 1844-0755
[ 개인회생 내용 ]
이름 : 김OO
연령대 : 53세 (기혼)
직업 : 대구 달성군 자동차 정비공 (22년차, 종합 정비공장 반장급)
월수입 : 3,200,000원 (세후·시간외수당 평균 포함)
가족관계 : 배우자(투석 환자), 자녀 2명 (대학 1학년·고등 2학년)
부양가족 : 배우자, 자녀 2명
채무금액 : 원금 62,000,000원
청산가치 : 7,500,000원
변제금액 : 23,560,000원
월변제금(가용소득) : 392,700원
변제기간 : 60개월
변제율 : 원금의 38.0% 상당액
특이사항 : 배우자 만성 신부전 혈액투석 본인부담·면역억제제 6년치 약 2,800만, 큰자녀 대학 등록금·기숙사비 4학기 약 1,400만, 본인 회전근개 파열 수술·6주 휴직 손실 약 900만, 본인 카드·캐피탈 돌려막기 약 1,100만. 정비업 특성상 시간외수당 변동 커 최근 12개월 평균 소득 입증, 의료비 영수증 6년치·등록금 납입증명서 4학기치 제출, 보정명령 1차 후 인가
후기 :

정비복 22년, 그리고 우리 가족 — 53세 정비기사의 6,200만 원 회생 9개월 후기
들어가며 — 정비공장의 새벽 6시
저는 올해 53세, 대구 달성군의 한 종합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는 정비기사입니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6시 30분이면 작업장에 도착합니다.
정비복으로 갈아입고, 작업화 끈을 묶고, 그날 입고된 차량 리스트를 확인하는 일이 22년째 변함없는 아침 풍경입니다.
작년 봄까지 저는 그 작업장에 도착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달 카드값이 또 빠지면, 아내 투석 약값은 어디서 마련하지.’
22년차 정비기사의 통장에 잔액이 12만 원 남아 있던 그 아침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공고 졸업, 그리고 정비복 — 우리집 둘째의 첫 월급
저는 1973년, 대구 달성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작은 농사를 지으셨고, 어머니는 동네 시장에서 채소 좌판을 보셨습니다.
저 위로 형이 한 명, 아래로 동생이 한 명 있는 둘째였습니다.
형은 공부를 잘해서 4년제 대학을 갔고, 저는 자연스럽게 공업고등학교 자동차과를 택했습니다.
졸업 직전 담임 선생님께서 대구 시내의 한 정비공장을 소개해 주셨고, 만 19세에 견습 정비공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월급이 38만 원이었습니다.
그 봉투를 들고 본가에 가서 어머니께 20만 원, 아버지께 10만 원을 따로 봉투에 담아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한참 동안 그 봉투를 만지작거리시다가, 결국 받지 않으시고 도로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봉투를 식탁 위에 두고 도망치듯 본가를 나왔습니다.
그날부터 매달, 22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습니다.
결혼과 두 아이 — 아내의 신장이 멈추기 시작한 해
스물여덟에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대구 시내의 한 작은 회계사무소에서 사무를 보던 사람이었고, 결혼 후 큰아이를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두 아이는 차례로 태어났고, 정비공장의 반장 자리에까지 오른 저의 월급으로 네 식구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2020년 봄이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발이 부어 동네 병원에 다녔고,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진료실 의자에 앉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사구체 여과율이 이미 많이 떨어졌습니다. 곧 투석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 한 마디가 우리 가정의 5년을 바꿔 놓았습니다.
아내는 그해 가을부터 주 3회, 동대구의 한 신장 투석 센터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의료비가 본인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면역억제제와 비급여 약제, 그리고 매번 투석 끝나고 식사·이동에 드는 부수 비용이 매월 누적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큰아이 대학 — 이번 학기는 어떻게 막을까
아내가 투석을 시작한 그 다음 해 봄,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3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매학기 큰아이의 학원비와 모의고사 응시료, 작은아이의 학용품과 급식비가 동시에 빠져나가는 달이 반복됐습니다.
큰아이는 다행히 본인이 원하던 지방 국립대 공학계열에 진학했습니다.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이 약 410만 원이었고, 기숙사비가 한 학기 130만 원이었습니다.
그 한 학기는 그동안 모아 두었던 마지막 적금을 깨서 막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학기부터였습니다.
4학기 동안 큰아이 등록금과 기숙사비, 그리고 한 달 생활비 30만 원을 합쳐 매 학기 약 350~400만 원이 추가로 필요했고, 그 돈은 모두 본인 명의의 카드와 신용대출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장학금 신청하면 되지 않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텐데, 큰아이는 1학년 학점이 다소 낮아 국가장학금이 2학년부터 적용됐고, 그 사이 두 학기의 공백이 컸습니다.
작은아이의 학원비와 교복·교재비도 같은 시기에 함께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4학기치 큰아이 등록금·기숙사비로만 약 1,400만 원이 본인 명의 채무로 쌓였습니다.
회전근개가 무너지던 날 — 본인의 어깨도 부품처럼
2024년 여름이었습니다.
정비공장에서 SUV 한 대의 변속기를 들어 올리던 도중, 오른쪽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팔을 90도 이상 올리기 어려웠고, 사흘이 지나도 통증이 줄지 않아 정형외과를 찾아갔습니다.
MRI 결과는 회전근개 전층 파열이었습니다.
정비공이라는 직업 특성상 어깨를 못 쓰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수술 후 약 6주의 휴직이 권고됐고, 산재 신청을 진행했지만 한 번의 명확한 사고가 아니라 누적성 손상으로 분류되어 산재 인정이 일부만 됐습니다.
수술비·입원비·재활 치료비에서 본인 부담만 약 600만 원이었고, 6주 휴직 동안 시간외수당이 빠지면서 월급 손실이 약 300만 원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메우는 데 본인 명의 카드 두 장이 한도까지 차올랐습니다.
같은 시기에 아내의 면역억제제 처방이 한 단계 비싼 약으로 바뀌었고, 매월 본인부담이 약 12만 원 추가로 늘었습니다.
저는 그해 가을, 처음으로 캐피탈에서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정비공 22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캐피탈 대출 서류에 서명하던 그날 저녁이, 지금도 마음에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그날 새벽 — 작업장 사무실 앞 의자에서의 결심
작년 가을, 어느 토요일 새벽이었습니다.
토요일은 정비공장이 오전 반일 근무인 날이고, 저는 평소보다 일찍 작업장에 도착해 사무실 앞 낡은 의자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휴대폰에 카드사 자동이체 출금 실패 알림이 두 건 연달아 떴습니다.
그 두 건의 합은 약 78만 원이었습니다.
통장 잔액은 그날 아침 9만 원 남짓이었고, 다음 월급일까지는 아직 11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의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작업장 셔터를 올리던 후배 정비공이 제 모습을 보고는, 말없이 옆에 와 같이 앉아 있어 주었습니다.
한참 뒤 그 후배가 ‘형님, 한 번만 회생 상담 받아보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후배는 본인 처남이 몇 해 전 회생을 받아 지금은 정상적으로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날 오전 반일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휴대폰으로 ‘대구 개인회생 법무사’를 검색했습니다.
검색 결과 상단에 ‘대구개인회생.net’이 보였고,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후기 글들을 1시간 가까이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서 아내에게 말없이 통장 사진 한 장을 보여 드렸고, 아내는 한참을 보더니 ‘한 번 받아보자’고 말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작업복 차림으로 찾아간 토요일
상담 예약은 그 다음 주 토요일 오후 2시로 잡혔습니다.
저는 그날 오전 근무를 마치고, 작업복에서 면바지로 갈아입을 시간만 겨우 내서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작업복에 묻은 기름 냄새가 아직 다 빠지지 않은 채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을 때, 솔직히 부끄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김재현 법무사님께서는 들어오시자마자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한 마디가, 22년 정비공으로 살아오며 한 번도 받지 못한 일종의 환대였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통장 내역, 카드 명세서, 아내의 투석 영수증 묶음을 책상 위에 올렸습니다.
법무사님께서는 묵묵히 영수증을 한 장씩 넘기시며 살펴보셨습니다.
‘본인 사정의 채무는 가족 의료비와 자녀 학자금이 주된 원인이라, 면책 사유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최근 12개월 평균 소득과 부양가족 인정만 잘 맞추면 변제율을 합리적인 선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법무사님의 그 차분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저는 한참 동안 참았던 한숨을 천천히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날 사무실에서 위임 계약을 체결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료 정리 7주 — 의료비 영수증과 등록금 납입증명서
위임 후 첫 2주 동안은 기본 자료를 모았습니다.
최근 12개월 급여명세서, 4대 보험 가입증명, 통장 거래내역, 신용정보원 신용정보 조회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정비업은 시간외수당과 성과수당의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월별 편차가 크기 때문에 법무사님께서는 단순 1개월 급여명세서가 아니라 최근 12개월 평균으로 가용소득을 산정해야 한다고 하셨고, 결과적으로 평균 320만 원이 인정됐습니다.
그다음 5주는 의료비와 학자금 입증이었습니다.
아내의 만성 신부전 진단을 받은 2020년 가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투석 영수증, 면역억제제·비급여 약제 결제 내역, 본인의 회전근개 수술·재활 영수증을 한꺼번에 모았습니다.
큰아이 등록금은 4학기치 등록금 납입증명서와 기숙사비 납부 내역, 그리고 제 통장에서 학교 계좌로 송금된 거래내역을 함께 제출했습니다.
‘그냥 카드로 긁었다’가 아니라 ‘이 결제는 이 의료비 영수증에 대응한다’는 식의 매칭표를 엑셀로 한 장 만들었습니다.
법무사님께서 만들어 주신 매칭표 양식을 따라가니, 6년치 의료비와 4학기치 학자금이 단정하게 한 장에 정리되었습니다.
자료가 모두 모이자 신청서를 접수하셨고, 약 4주 뒤 대구지방법원에서 개시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날부터 카드사 추심 전화가 모두 멈췄습니다.
작업장에서 휴대폰을 공구함 위에 올려두어도 알림이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가,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보정명령 1차 — 그리고 인가결정 봉투
개시결정 이후 채권자 의견 조회를 거치며 보정명령이 한 번 내려왔습니다.
보정명령의 내용은 가용소득 산정 근거를 더 자세히 제출하라는 것과, 의료비 영수증 중 일부에 대해 본인이 직접 결제한 것인지 본가 통장에서 결제하시고 본인이 보전한 것인지 구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법무사님께서 최근 12개월 급여명세서에 더해 정비공장 인사담당에서 받은 시간외수당 평균 산정표를 첨부해 가용소득 부분을 보정했습니다.
의료비 부분은 카드 결제 내역과 본가 통장 거래내역을 대조해 한 장의 표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 표를 보고 법무사님께서 ‘본인 평소에 정비기록부 꼼꼼히 적으시는 분 같습니다’라고 농담을 건네셨고, 저는 오랜만에 작업장이 아닌 곳에서 작게 웃었습니다.
보정을 마치고 약 한 달 뒤, 변제계획 인가결정문이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법무사님께서 직접 결정문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월 변제금 392,700원, 60개월, 변제율 38.0%.’
그 문자를 받은 날, 저는 점심시간에 작업장 한쪽 그늘에 서 있었습니다.
문자를 한 번 더 읽고, 그날 오후 작업이 평소보다 손이 가볍게 진행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인가 4개월차의 작업장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인가 결정 후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매월 25일에 신탁계좌로 392,700원이 자동이체되고 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그 25일이 다가오면 약간 긴장이 되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위임 직후에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큰아이에게는 인가 결정 후에 말했습니다.
큰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아빠 죄송해요’라고 말했고, 다음 학기부터는 본인이 학자금 대출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고마웠지만, ‘본인 공부에만 집중하면 된다’고만 말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주 3회 투석을 다니고 있고, 면역억제제 처방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매월 의료비 본인부담 부분이 인가 후에는 가용소득 계산에 반영되어 있어, 부족분을 카드로 막아야 하는 상황은 없어졌습니다.
작업장에서 회전근개 통증은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작업 위주로 동선이 조정되어 큰 무리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작업장 문을 열 때, 이제는 카드값 알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한 가지 변화가, 저에게는 회생의 가장 큰 결과입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분들께 — 가족 의료비와 자녀 학자금으로 빚이 늘어난 분들께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중에는, 본인 명의의 카드가 가족의 의료비와 자녀의 학자금으로 채워진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자의 만성 질환, 자녀의 학자금, 본인의 산재성 부상.
이런 채무는 본인이 사치한 빚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 가서 말하기도 어렵고 본인 스스로도 ‘이 정도는 가장으로서 책임져야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22년 동안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더 늦게 상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개인회생은 본인의 책임감을 부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본인이 지킬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60개월에 걸쳐 성실하게 이행하기로 약속하는 절차였습니다.
그 약속 위에서 나머지 절반 이상은 면책으로 정리되고, 그 자리에 다시 본인의 일상이 들어옵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배우자나 부모님의 의료비 영수증, 자녀 등록금 납입증명서, 카드 결제 내역, 본가 통장 거래내역.
이런 자료들을 지금부터라도 한 폴더에 모아두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상담을 받으실 때 이 자료들이 그대로 채무 발생 원인 입증 자료가 됩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김재현 법무사님께 상담을 받으시면, 본인의 사정에 맞게 자료 정리 방법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십니다.
저처럼 토요일 새벽 작업장 사무실 앞 의자에서 더 이상 통장 잔액을 들여다보지 않으셔도 되는 날이, 한 분이라도 더 빨리 오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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