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회생 후기 올립니다.
대구에서 자영업 폐업 후 개인회생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https://대구개인회생.net
상담센터 : 1844-0755

[ 개인회생 내용 ]
이름 : 정OO
연령대 : 40대 후반
직업 : 건설현장 일용직 (전 한식당 운영 8년 후 폐업)
월수입 : 2,800,000원 (일당 13만 원 × 평균 22일 + 주말 부가 작업)
가족관계 : 배우자와 자녀 1명 3인 가구
부양가족 : 배우자, 중학교 2학년 자녀
채무금액 : 원금 94,000,000원
청산가치 : 11,000,000원
변제금액 : 30,000,000원
월변제금(가용소득) : 500,000원
변제기간 : 60개월
변제율 : 원금의 31.9% 상당액
특이사항 : 한식당 8년 운영 후 코로나 누적 매출 감소로 폐업, 사업자대출(소상공인 정책자금) 4,800만 + 카드·캐피탈 누적 4,600만, 보증기관 대위변제 후 구상금이 회생채권에 편입, 폐업증명원·세금계산서·매출장부 24개월치 입증, 보정명령 5차 후 인가
후기 :
한식당 8년의 마지막 일지 — 47세 자영업자의 9,400만 원 회생 9개월 후기
들어가며 — 한식당 출입문을 닫던 그 봄
저는 40대 후반의 폐업 자영업자입니다.
대구에서 한식당을 8년 운영하다 작년 봄에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폐업 신고를 마치고 가게 출입문에 마지막 자물쇠를 채우던 날이 작년 4월의 어느 화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차를 몰고 가게로 돌아가 셔터를 내리고, 그 자리에 5분쯤 서 있었습니다.
8년 동안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식자재를 받고 저녁 열한 시에 마감하던 가게였습니다.
그 가게가 마지막으로 받은 매출이 그 전 주 토요일 점심 손님 두 테이블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날 셔터를 내린 자영업자가 지금 다시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9,400만 원의 채무를 5년 변제 계획으로 정리한 9개월의 기록입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폐업 자영업자, 그리고 폐업을 고민 중이신 자영업자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식당 8년의 첫 페이지 — 처음 가게를 연 봄날
저는 결혼 전에 호텔 주방에서 12년을 일했습니다.
그 12년 끝에 본인 가게를 열고 싶다는 마음으로 2018년 봄에 대구 수성구의 한 골목에 18평 한식당을 열었습니다.
처음 1년은 정착에 시간이 걸렸지만 2년 차부터 점심 단골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주방 보조 한 명과 홀 한 명을 두고 운영했고, 월 매출이 약 2,800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식자재·인건비·임대료·세금을 제하면 본인 손에 들어오는 순소득은 월 평균 320만 원 정도였습니다.
3인 가족이 살기에 부족하지 않았고, 자녀 학원비도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기 식당 노트 첫 페이지에는 단골 손님들의 이름과 자주 시키는 메뉴, 그리고 어떤 분이 어떤 날에 어떤 부탁을 했는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OO 사장님 — 매주 수요일 점심, 김치찌개 약하게, 밥 적게.”
“박OO 부장님 — 회식 시 1인분 추가, 술 약함.”
그 노트가 식당 운영 8년 동안 매일 한 페이지씩 채워졌습니다.

코로나의 첫해 — 매출 절반의 시작
2020년 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점심 손님이 첫 달에 평소의 60%로 줄었습니다.
저녁 손님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월 매출 2,800만 원이 1,600만 원으로 내려갔고, 그 1,600만 원에서 임대료 220만 원·식자재 700만 원·인건비 380만 원·공과금 80만 원을 빼면 본인 손에 들어오는 돈이 약 220만 원이었습니다.
식당 노트 그달 페이지 끝에 작게 적었습니다.
“이번 달이 가장 어려운 달이다. 다음 달은 분명히 회복될 거다.”
그 한 줄이 그 후 18개월 동안 매달 반복되었습니다.
주방 보조 한 명을 그만두게 했고, 홀 직원도 일주일 4일로 줄였습니다.
본인이 새벽 다섯 시 식자재 받기부터 저녁 마감 청소까지 직접 했습니다.
그래도 월 100만 원씩 적자가 났습니다.
코로나의 둘째 해 — 사업자대출의 첫 한도
2021년 겨울에 본인 신용카드 두 장의 한도가 모두 막혔습니다.
식자재 결제를 못 하는 상황이 처음 생겼습니다.
거래처에 한 달 외상으로 부탁드렸고, 다음 달 매출로 메우려고 했지만 다음 달 매출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소상공인 정책자금 사업자대출 3,500만 원을 받았습니다.
낮은 금리(연 2%대)였고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 상품이었습니다.
그 3,500만 원으로 본인 카드 한도를 회복시키고 거래처 외상도 정리했습니다.
그 직후 한두 달은 식당이 다시 정상 운영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는 여전히 지속되었고,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6개월 후에 사업자대출 추가 1,300만 원을 더 받았습니다.
식당 노트 그 시기 페이지에 작게 적혀 있습니다.
“사업자대출 4,800만 원. 다행이다. 6개월만 버티면 회복될 것이다.”
그 한 줄이 본인이 마지막으로 식당 노트에 적은 희망적인 문장이었습니다.

폐업 결심 — 작년 봄, 마지막 식자재 발주
작년 2월의 어느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저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식자재 발주 명세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달 매출 예상이 1,200만 원이었고, 운영비용 합계가 1,420만 원이었습니다.
월 적자 220만 원이 누적되면 본인 카드 잔여 한도가 2개월 안에 0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본인 채무가 사업자대출 4,800만 + 카드 3,200만 + 캐피탈 1,400만 = 총 9,400만 원이었습니다.
매월 이자만 약 92만 원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에 처음으로 “폐업”이라는 단어를 본인 입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가게 닫을까.”
아내는 묵묵히 듣고 한참 후에 답했습니다.
“당신이 결정해.”
그날 오후에 임대인에게 전화해 5월 말까지 보증금 정산 후 가게를 비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폐업 결정을 내리는 데 8년이 걸린 것 같았습니다.
새벽 5시의 결심 — 일용직 트럭 대기 줄에서
폐업 후 한 달이 지난 작년 6월의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저는 새벽 다섯 시에 대구의 한 인력사무소 앞 트럭 대기 줄에 처음 서 있었습니다.
12년의 호텔 주방 경력과 8년의 본인 식당 운영 경력이, 작업복 한 벌과 안전화 한 켤레로 바뀌어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전 일당이 11만 원이었고, 점심 도시락 한 개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손에 든 11만 원을 식탁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아내가 “수고했어요”라고 한 마디만 하고 다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인력사무소 앞에 나갔고, 약 다섯 번 일당을 받았습니다.
한 달 평균 일수가 약 22일로 안정되기까지 두 달이 걸렸습니다.
월 수입이 약 280만 원으로 자리잡았지만, 매월 92만 원의 채무 이자는 그대로 빠져나갔습니다.
본인 카드 한도가 모두 막혔기 때문에 거래처 외상도 없고 추가 대출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고, 한 달에 한 번씩 본인 명의 신용카드 한 곳에서 연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체 시작 후 일주일 만에 추심 전화가 하루 다섯 통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첫 상담의 한 마디
작년 9월 초순의 어느 토요일 새벽이었습니다.
카드사 추심 전화를 받은 직후 잠이 오지 않아 한 시간 동안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대구에서 “대구개인회생 자영업자”라는 검색어로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글들이 정직한 톤이었고, 자영업자 사건에 대한 사례가 여러 편 있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아홉 시 정각에 전화를 걸었고, 일주일 뒤 토요일 오후로 상담이 잡혔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저는 작업복 차림이었습니다.
오전 일을 마치고 곧장 사무실로 왔습니다.
김재현 법무사님이 상담실로 들어오시며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가게는 언제 닫으셨어요?”였습니다.
“작년 5월에 닫았습니다.”
“폐업 신고는 마치셨어요?”
“네, 폐업증명원도 받았습니다.”
김재현 법무사님이 잠시 메모를 하시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사업자대출은 보증기관 보증부 상품이지요?”
“네,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으로 받았습니다.”
그분이 가만히 끄덕이시며 답하셨습니다.
“보증기관이 이미 대위변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자대출은 회생 채권으로 편입되어 다른 채무와 함께 처리됩니다. 자영업자 회생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자주 오해받는 지점입니다.”
그 한 마디로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8년 동안 본인이 모르고 있던 사업자대출의 구조가 그 자리에서 한 번에 정리되었습니다.
상담이 끝나기 전에 사건 위임을 결정했고, 그날부터 9개월의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료 정리 12주와 보정명령 5번
자료 정리에 정확히 12주가 걸렸습니다.
자영업자 회생 사건은 일반 근로자 사건보다 자료의 양이 훨씬 많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요구한 자료 목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임대차계약서, 폐업증명원, 사업자등록증 사본.
식당 운영 12개월치 매출장부와 부가가치세 신고서 4분기치.
식자재 거래처별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 12개월치.
인건비 지급 내역 (홀 직원과 주방 보조의 월별 급여 계좌이체 내역).
본인 카드 4사 24개월치 명세서, 캐피탈 2곳의 대출 계약서와 24개월치 거래내역.
사업자대출 4,800만 원의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
본인 일용직 일당 수령 내역 6개월치 (인력사무소 발급).
거주지 임대차계약서, 자동차 등록증, 보험 가입 내역.
12주에 걸쳐 자료를 모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식당 8년의 매출장부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폐업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8년치 장부를 다시 펼치는 것은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신청은 작년 12월 중순에 전자소송 시스템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접수 후 약 3주 만에 첫 번째 보정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자영업자 사건은 보정명령이 보통 4~6회 정도 나온다고 미리 안내받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다섯 번의 보정명령에서 요구된 자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차: 식당 운영 시기 친족 간 자금 이동 명세 소명 (장모님께 빌렸던 500만 원의 차용·상환 내역).
2차: 식당 폐업 직전 6개월간 식자재 외상 변제 시점·금액 소명.
3차: 사업자대출 보증기관 대위변제 시점과 구상금 명세 확인.
4차: 폐업 후 일용직 전환 시점의 인력사무소 발급 일당 수령 내역 추가 6개월치.
5차: 본인 자동차의 영업 사용 여부 (식당 시기에 식자재 운반 용도였는지) 확인.
다섯 번째 보정명령까지 약 10주가 걸렸습니다.
각 보정명령마다 자료 준비, 사무실 검토, 제출까지 1~2주가 소요됐습니다.
보정명령이 반복될수록 마음이 지쳤지만, 사무실에서 “자영업자 사건은 보정 횟수가 많을수록 인가가 안정적입니다”라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인가결정의 그 봉투 — 그리고 매월 25일
다섯 번째 보정명령에 대한 답변이 제출된 후 약 4주 만에 개시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며 손이 떨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사건을 개인회생절차로 개시한다”는 문장을 봤을 때, 폐업 후 1년 4개월 동안 한 발씩 걸어온 시간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결과로 모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시결정 이후 일상에서 즉시 바뀐 점이 있었습니다.
카드사 4곳과 캐피탈 2곳에서 매일 10통 안팎으로 오던 추심 전화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식당 시기 거래처 한 곳이 진행하던 외상 채권 소액 소송이 법원 명령으로 중지되었습니다.
본인 명의 자동차에 대한 가압류 예고 등기 우편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새벽 인력사무소 트럭 대기 줄에 서 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그날 일당이 11만 원인지 12만 원인지가 그달 카드 결제일 잔액을 결정했지만, 개시결정 이후로는 그 계산이 단순해졌습니다.
월 변제금 50만 원만 정해진 날에 입금하면 그 외 잔금은 가계 운영비로 쓸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채권자 집회는 개시결정 약 7주 후로 잡혔고, 김재현 법무사님이 대리 출석해 주셨습니다.
채권자 집회 후 약 8주가 지난 시점에 변제계획 인가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인가결정문에는 총 채무 9,400만 원, 청산가치 1,100만 원, 총 변제액 3,000만 원, 월 변제금 50만 원, 변제 기간 60개월, 변제율 31.9%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약 9,400만 원의 채무 중에 약 3,000만 원만 5년간 갚으면 나머지가 탕감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음 달 25일부터 회생위원 지정 계좌로 월 50만 원씩 입금이 시작된다는 안내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지금, 인가 4개월차의 일상
인가결정 후 4개월째인 지금, 매월 25일에 회생위원 계좌로 50만 원을 입금하고 있습니다.
카드 결제가 모두 정지되어 모든 소비를 체크카드 또는 현금으로 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두 달이 지나니 오히려 가계 관리가 수월해졌습니다.
월 50만 원 변제 후 남는 돈으로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처음으로 비상금 8만 원을 별도 통장에 적립했습니다.
8만 원이지만 저에게는 식당 폐업 후 처음 본 진짜 잔여액이었습니다.
인력사무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 일자리(주 1회 고정 현장)를 잡아주셔서 월 수입이 약 30만 원 정도 안정적으로 늘었습니다.
아내도 봄부터 주 3회 마트 캐셔 파트타임을 시작했습니다.
가구 월 수입이 약 320만 원이 되었고, 변제금 50만 원과 가계 생활비를 빼면 약 20만 원이 매월 남습니다.
5년 후 변제가 끝나는 시점에 작은 적금이라도 모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새벽에 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식당 운영 마지막 2년 동안 매일 새벽 두세 시까지 매출·이자 계산을 반복하던 시간이, 인가결정 이후 거의 사라졌습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어느 일요일 저녁에 “아빠 요즘 표정이 편해 보여”라고 했을 때, 그게 9개월의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폐업 자영업자 분들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 중에 식당·미용실·소매점·서비스업·학원 같은 자영업을 운영하다 폐업을 고민 중이시거나 폐업 후 채무 정리를 못 하고 계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그 폐업 결정을 내리기까지 18개월이 걸렸습니다.
“6개월만 버티면 회복될 거다”라는 한 줄을 18개월 동안 매달 본인 노트에 반복해서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 18개월 동안 사업자대출 4,800만 원이 추가로 생겼고, 본인 카드 한도가 전부 막혔습니다.
폐업을 더 일찍 결정했더라면 그 일부 채무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만약 본인이 자영업을 운영하시고 12개월 평균 가계가 적자라면 그 시점이 이미 위험 신호입니다.
본인 카드와 사업자대출로 운영비용 적자를 메우기 시작하셨다면 멈추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폐업이 패배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결정이라는 것을 저는 식당 문을 닫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폐업 후 일용직·근로직으로 전환하시면 사업자 시기의 변동성과 다른 안정적 소득이 만들어집니다.
그 안정적 소득으로 회생 신청이 가능하고, 사업자 시기 누적된 채무를 60개월 변제 계획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영업자가 받은 사업자대출은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기술보증기금 등)의 대위변제 후 회생 채권으로 편입됩니다.
“사업자대출은 회생이 안 된다”는 인터넷의 흔한 오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처럼 8년의 식당 운영 끝에 폐업하고 일용직으로 전환한 자영업자도 9,400만 원의 채무를 60개월 변제 계획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폐업 후 회생을 고민하고 계신 자영업자 분들께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무료 상담은 부담 없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폐업증명원과 12개월 매출장부, 사업자대출 계약서만 가지고 오시면 한 번의 상담으로 본인 사건의 80% 이상이 확인됩니다.
저는 그날 작업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가 첫 상담을 받았고, 그 한 시간이 9개월의 길을 결정했습니다.
폐업이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5년 후에 본인이 다시 작은 적금이라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같은 자리에 계신 분들께 전하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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