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회생 후기 — 연대보증 채무 5,200만 포함 7,400만 원 회생 8개월

[ 대구개인회생 후기 ] 청소노동자 (50대 후반, 병원·학교 청소 4년차) / 월평균수입 260만 / 채무금액 : 원금 7천400만 / 청산가치 : 7백 / 변제금액 : 2천340만 / 변제기간 : 60개월 / 변제율 : 원금의 31.6% 상당액

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회생 후기 올립니다.
대구에서 가족 연대보증 채무로 개인회생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청소노동자 회생 후기 — 연대보증 채무 5,200만 포함 7,400만 원 회생 8개월
청소노동자 회생 후기 — 연대보증 채무 5,200만 포함 7,400만원 회생 8개월

[ 개인회생 내용 ]


이름 : 손OO
연령대 : 50대 후반 (58세)
직업 : 청소 일용직 (병원 새벽 청소 + 학교 주말 청소 4년차)
월수입 : 2,600,000원 (병원 정기 + 학교 주말 + 평일 추가)
가족관계 : 배우자와 2인 가구 (자녀 2명 출가)
부양가족 : 배우자 (전 식당 운영, 폐업 후 일용직)

채무금액 : 원금 74,000,000원
청산가치 : 7,000,000원
변제금액 : 23,400,000원
월변제금(가용소득) : 390,000원
변제기간 : 60개월
변제율 : 원금의 31.6% 상당액
특이사항 : 남편 식당 사업자대출 연대보증 5,200만 + 본인 카드·캐피탈 2,200만 —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 대위변제 후 구상금이 본인에 대한 회생 채권으로 편입, 청소 일용직 12개월 평균 소득 산정, 보정명령 3차 후 인가



후기 :

새벽 네 시 반의 병원 복도 — 58세 청소노동자의 7,400만원 회생 8개월 후기 (남편 연대보증채무 5,200만 정리)

들어가며 — 새벽 네 시 반의 병원 복도

저는 50대 후반의 청소노동자입니다.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새벽 청소를 하고 있고, 주말에는 인근 학교 청소도 갑니다.

매일 새벽 네 시 반에 병원 복도의 형광등을 켜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병동이 깨어나기 한 시간 전, 텅 빈 복도에서 청소 카트의 바퀴 소리만 들리는 그 시간이 어느덧 4년째입니다.

저는 결혼 후 25년을 전업주부로 살았습니다.

4년 전 남편이 식당을 폐업한 다음 달부터 처음으로 본인의 일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새벽 청소 4년 동안 본인 명의로 떠안았던 7,400만원의 채무가 5년 변제 계획으로 정리된 8개월의 기록입니다.

특히 남편의 사업자대출 5,200만원이 보증인 본인에게 어떻게 돌아왔고 그것이 회생 절차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같은 자리에 계신 가족 연대보증 채무 보유자, 그리고 50대·60대의 배우자 부양자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5년 가정주부의 어느 봄

저는 결혼 후 25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았습니다.

큰딸과 작은딸이 결혼해 출가했고, 부부 둘이 사는 시간이 시작된 지 7년이 되었을 때 남편이 한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평일 점심에는 가게 일을 도왔습니다.

주방 보조와 함께 김치를 담그고, 점심 손님이 빠지면 남편이 잠깐 쉬는 동안 카운터를 봤습니다.

식당이 잘되던 4년 동안 본인 통장에 처음으로 월 50만원씩 적립을 시작했습니다.

50대 후반에 처음으로 본인 명의의 적금 통장을 가져 본 시기였습니다.

그 적금이 깨진 것이 식당 폐업 직전이었습니다.

코로나 둘째 해부터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1년 반의 누적 적자가 식당의 운영 자금을 다 흡수했습니다.

남편이 본인에게 처음으로 “여보, 가게 더 못 할 것 같다”고 말한 날이 작년 봄이었습니다.




남편 식당의 폐업 — 보증인 도장 다섯 장

남편이 식당을 운영하던 8년 동안 본인은 두 번의 사업자대출에 연대보증인으로 도장을 찍었습니다.

첫 번째는 식당 개업 자금 3,000만원의 보증.

두 번째는 코로나 시기 운영자금 2,200만원의 보증.

둘 다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 상품이었고, 보증기관 외에 본인이 연대보증인으로 함께 도장을 찍었습니다.

남편의 사업자대출 총액이 약 5,200만원이었습니다.

폐업 신고가 작년 4월 말에 마쳐졌고, 그 직후 보증기관에서 대위변제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폐업 후 약 3개월이 지난 작년 7월에 본인 명의로 등기 우편이 한 통 도착했습니다.

“채무자 본인 및 연대보증인 손OO 귀하.”

“귀하의 연대보증 채무 5,200만원에 대한 구상권 행사 통지서.”

그 봉투를 열어보던 그날의 손 떨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25년 가정주부로 살면서 본인이 진 채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장을 찍을 때마다 “이건 형식상의 도장입니다”라는 설명을 들었고, 본인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 5,200만원이 본인의 채무로 바뀌어 등기 우편으로 돌아왔을 때, 25년의 가정주부 시절이 한 순간에 다른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연대보증 채무자의 첫 상담의 길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연대보증 채무자의 첫 상담의 길



본인 카드의 첫 한도 — 50대 후반을 넘어가며

구상권 통지서가 도착한 다음 달부터 본인 명의 신용카드 세 장에서 월 약 35만원씩 이자가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체 시작 전에 본인이 한 번 결제 능력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본인 카드에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50대 후반에 처음으로 본인 명의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 버튼을 누르던 그 손가락 떨림도 기억합니다.

한 달 35만원이 두 달, 세 달 쌓이면서 카드 한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6개월 만에 한 카드의 한도가 0이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 캐피탈 한 곳에서 한도 8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800만원으로 본인 카드 두 곳의 잔액을 일부 갚고 결제 능력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캐피탈 800만원의 매월 이자가 약 22만원이었습니다.

월 부족액에 22만원이 추가되었고, 다음 달 그 22만원을 또 다른 카드 현금서비스로 메웠습니다.

본인 명의의 카드·캐피탈 채무가 약 2,200만원이 되었을 때 남편의 보증채무 5,200만원과 합하면 본인 전체 채무가 7,400만원이었습니다.

청소 월급 260만원, 남편 일용직 월급 약 180만원, 가구 합산 440만원의 수입에서 매월 채무 이자만 75만원 가까이 빠져나가는 구조였습니다.

새벽 청소 4년 동안 한 번도 결근하지 않은 본인의 노동이 매월 채무 이자로 사라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 청소 휴게실 의자에 앉아

작년 10월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저는 병원 새벽 청소를 마치고 7층 청소 휴게실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청소 카트 옆 작은 텀블러에 식어 가는 커피를 두고, 휴대폰 잔액 알림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달 카드 결제일이 다음 주 금요일이었고 통장에는 47만원이 있었습니다.

7,400만원 중에 그 주 갚아야 하는 금액만 약 220만원이었습니다.

본인 청소 월급과 남편 일용직 월급 합산 440만원으로는 산수가 안 나왔습니다.

마지막 신청한 캐피탈 한도 심사가 거절되었다는 문자를 새벽 다섯 시에 받았습니다.

저는 그날 휴게실 의자에 앉아 처음으로 “보증인 개인회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인터넷 글들을 읽었습니다.

대구에서 “대구개인회생 연대보증”이라는 검색어로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글들이 정직한 톤이었고, 연대보증 채무 사례가 여러 편 있었습니다.

특히 50대·60대 여성이 남편 또는 자녀의 연대보증으로 본인 명의 채무를 떠안은 사례가 본인 사건과 거의 같았습니다.

아침 아홉 시 정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으신 분이 “선생님,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보증인 채무는 본인이 만든 채무가 아니지요”라고 첫 마디를 했을 때, 사실 거기서 한 번 울었습니다.

그 한 통화가 8개월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 첫 상담의 한 마디

상담은 일주일 뒤 토요일 오전으로 잡혔습니다.

청소 일이 새벽 네 시 반부터 아홉 시까지라 토요일 오전이 가장 편한 시간이었습니다.

상담 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저는 청소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왔습니다.

김재현 법무사님이 상담실로 들어오시며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남편 사업자대출 보증은 몇 건이세요?”였습니다.

“두 건입니다. 식당 개업 자금 3,000만원과 운영 자금 2,200만원입니다.”

“두 건 다 보증기관 보증부였지요? 지역신용보증재단이세요?”

“네, 둘 다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부입니다.”

김재현 법무사님이 가만히 끄덕이시며 답하셨습니다.

“보증기관이 이미 본인 명의로 대위변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상권 통지서 받으셨지요? 그러면 보증기관이 본인에 대한 채권자가 됩니다.”

“그러면 그 5,200만원이 회생 채권으로 편입되어 본인 카드·캐피탈 채무와 함께 60개월 변제 계획에 포함됩니다.”

저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4년 동안 새벽 청소를 다닌 것 같았습니다.

본인이 한 푼도 받지 않은 5,200만원의 보증채무가 본인 명의로 돌아와 7,400만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였는데, 그 5,200만원도 함께 5년 변제 계획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한 시간의 상담이 끝나기 전에 사건 위임을 결정했고, 그날부터 8개월의 본격적인 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연대보증채무의 구조 — 보증기관 대위변제 후

연대보증 회생 사건에서 가장 자주 오해받는 부분이 “보증인은 본인이 진 빚이 아니라 갚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본인도 신청 전까지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이 받은 사업자대출 5,200만원은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이 90%를 보증하고 본인이 연대보증으로 10%를 보증하는 구조였습니다.

남편의 식당 폐업으로 사업자대출이 보증사고가 되면, 보증기관이 은행에 5,200만원을 대위변제합니다.

대위변제 후 보증기관은 채무자(남편)와 연대보증인(본인)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폐업 후 별도의 재산이 없으면, 보증기관의 구상권 추심이 주로 본인에게 집중됩니다.

본인의 청소 월급에 압류가 들어올 수 있고, 본인 명의 자동차에도 가압류가 가능합니다.

이 시점에 본인이 회생 신청을 하면 보증기관의 구상금 5,200만원이 본인에 대한 회생 채권으로 편입됩니다.

본인의 카드·캐피탈 채무 2,200만원과 함께 모두 합쳐 7,400만원이 회생 채권으로 처리됩니다.

5년 동안 정해진 월 변제금만 회생위원 계좌로 입금하시면 나머지 약 5,060만원이 인가 후 변제 종료 시 탕감됩니다.

즉 본인이 한 푼도 받지 않은 보증채무도 회생 절차에서 정상적으로 처리되어 5년 후에 탕감이 가능합니다.

“연대보증은 본인이 진 빚이 아니니 회생이 안 된다”는 인터넷의 흔한 오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12주의 자료 정리 —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남편 폐업증명원
12주의 자료 정리 —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남편 폐업증명원



자료 정리 12주와 보정명령 3번

자료 정리에 정확히 12주가 걸렸습니다.

연대보증 회생 사건은 본인 자료 외에 남편 식당 폐업 관련 자료도 함께 정리해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요구한 자료 목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본인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임대차계약서.

본인 청소 일용직 일당 수령 내역 12개월치 (병원·학교 각각).

본인 명의 신용카드 3사 24개월치 명세서, 캐피탈 1곳의 대출 계약서·거래내역.

남편 식당의 사업자등록증·폐업증명원·임대차계약서.

남편 사업자대출 2건의 대출약정서·보증약정서 사본.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 대위변제 확인서·구상권 통지서.

본인 자동차 등록증, 보험증권, 거주지 임대차계약서.

12주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남편 식당의 폐업증명원과 사업자대출 약정서를 다시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폐업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 서류들을 꺼내는 것은 마음을 다잡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신청은 작년 1월 중순에 전자소송 시스템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접수 후 약 3주 만에 첫 번째 보정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연대보증 사건은 자료가 명확하면 보정명령이 비교적 적게 나온다고 미리 안내받았고, 실제로 본인 사건은 3회로 정리되었습니다.

세 번의 보정명령에서 요구된 자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차: 남편 사업자대출 2건의 보증약정서 원본과 도장 확인 (보증인 본인의 동의 확인).

2차: 보증기관 대위변제 시점과 구상금 명세 확인서.

3차: 본인 청소 일용직 일당 수령 내역 12개월 전체 (병원·학교 합산표).

세 번째 보정명령까지 약 7주가 걸렸습니다.

각 보정명령마다 자료 준비, 사무실 검토, 제출까지 1~2주가 소요됐습니다.

사무실에서 “연대보증 사건은 보증기관 대위변제 확인서가 명확하면 인가가 깔끔하게 나옵니다”라고 안내해 주셨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인가결정 봉투 — 그리고 매월 10일

세 번째 보정명령에 대한 답변이 제출된 후 약 3주 만에 개시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며 손이 떨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사건을 개인회생절차로 개시한다”는 문장을 봤을 때, 그동안 한 발씩 걸어온 시간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결과로 모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개시결정 이후 일상에서 즉시 바뀐 점이 있었습니다.

보증기관과 카드사·캐피탈에서 매일 5~8통씩 오던 추심 전화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보증기관이 진행하던 본인 청소 월급 압류 절차가 법원 명령으로 중지되었습니다.

본인 명의 자동차에 대한 가압류 예고 등기 우편이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새벽 청소 출근길에 휴대폰 진동이 울려도 가슴이 내려앉지 않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새벽 네 시에 청소 카트를 끌면서 진동을 끄던 시간이 매일 반복되었는데, 개시결정 이후로는 그 진동이 사라졌습니다.

채권자 집회는 개시결정 약 6주 후로 잡혔고, 김재현 법무사님이 대리 출석해 주셨습니다.

채권자 집회 후 약 6주가 지난 시점에 변제계획 인가결정문이 우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인가결정문에는 총 채무 7,400만원, 청산가치 700만원, 총 변제액 2,340만원, 월 변제금 39만원, 변제 기간 60개월, 변제율 31.6%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약 7,400만원의 채무 중에 약 2,340만원만 5년간 갚으면 나머지가 탕감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다음 달 10일부터 회생위원 지정 계좌로 월 39만원씩 입금이 시작된다는 안내도 함께 도착했습니다.

인가결정문 채권자 목록에 보증기관(지역신용보증재단)이 5,200만원의 채권자로 정상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본인이 한 푼도 받지 않은 보증채무 5,200만원이 본인의 5년 변제 계획에 정상 편입되었고, 그 5년 후에 함께 탕감되는 구조가 한 장에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인가결정의 그날 — 7,400만 채무가 2,340만 변제로
인가결정의 그날 — 7,400만 채무가 2,340만 변제로



지금, 인가 4개월차의 새벽

인가결정 후 4개월째인 지금, 매월 10일에 회생위원 계좌로 39만원을 입금하고 있습니다.

카드 결제가 모두 정지되어 모든 소비를 체크카드 또는 현금으로 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두 달이 지나니 오히려 가계 관리가 수월해졌습니다.

월 39만원 변제 후 남는 돈으로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달부터 처음으로 비상금 5만원을 별도 통장에 적립했습니다.

5만원이지만 저에게는 식당 폐업 후 처음 본 진짜 잔여액이었습니다.

청소 일은 그대로 새벽 네 시 반에 시작해 오전 아홉 시에 마칩니다.

주말 학교 청소도 그대로 토요일 오전에 진행됩니다.

남편도 일용직 일이 봄부터 안정되어 월 약 200만원이 들어옵니다.

가구 월 수입이 약 460만원이 되었고, 변제금 39만원과 가계 생활비를 빼면 약 30만원이 매월 남습니다.

5년 후 변제가 끝나는 시점에 작은 적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새벽 청소 출근길의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4년 동안 매일 새벽 네 시 반에 병원 복도를 걸으면서 머릿속에 다음 결제일과 잔여 한도 계산이 반복되던 시간이, 인가결정 이후 거의 사라졌습니다.

결혼해서 떠난 큰딸이 어느 일요일에 본인 집에 들렀다가 “엄마 요즘 표정이 편해 보여요”라고 했을 때, 그게 8개월의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인가 4개월차의 새벽 — 병원 청소가 끝나면 다시 학교 출근
인가 4개월차의 새벽 — 병원 청소가 끝나면 다시 학교 출근



같은 자리에 계신 보증인·배우자 부양자 분들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 중에 배우자·자녀·형제의 사업자대출이나 신용대출에 연대보증인으로 도장을 찍어 두신 분이 있으실 겁니다.

본인이 받은 돈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보증채무가 본인 채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저는 25년 가정주부로 살면서 남편 사업자대출에 연대보증을 두 번 섰고, “이건 형식상의 도장”이라는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5,200만원이 본인 명의로 돌아오는 데 정확히 5년이 걸렸고, 그 직후 본인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50대 후반에 처음으로 본인 명의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 버튼을 누르면서, 25년 가정주부의 시간이 한 순간에 다른 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 본인이 가족의 사업자대출이나 신용대출에 연대보증인으로 도장을 찍어 두셨고, 그 가족 사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가 보이신다면 그 시점이 이미 위험 신호입니다.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보증기관이 대위변제 후 본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고, 그 시점부터 본인 명의의 채무가 시작됩니다.

특히 50대·60대의 여성 보증인 분들께 강조드립니다.

연대보증인의 본인 명의 채무도 회생 절차에서 정상적으로 처리됩니다.

본인이 한 푼도 받지 않은 보증채무도 5년 변제 계획에 편입되어 5년 후에 탕감이 가능합니다.

“본인이 받은 돈이 아니니 회생이 안 된다”는 인터넷의 흔한 오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대구에서 가족 연대보증 채무 정리를 고민하고 계신 50대·60대 여성 분들께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무료 상담은 부담 없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본인 명의 카드 명세서와 가족의 사업자대출 약정서·보증기관 구상권 통지서만 가지고 오시면 한 번의 상담으로 본인 사건의 80% 이상이 확인됩니다.

저처럼 25년 가정주부로 살다가 4년 새벽 청소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이 7,400만원의 빚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날 휴게실 의자에서의 결심 덕분이었습니다.

5년 후 변제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한 번 이 사무실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겠다고 김재현 법무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때까지 매월 10일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입금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책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구 개인회생파산 전문 김재현 법무사 무료상담센터 1844-0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