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개인회생 개인파산 면책 전문 김재현 법무사 입니다.
오늘은 OO 대구지방법원 개인회생 결정문 올립니다.
대구에서 개인회생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도움 되시길 바라며,
궁금하신점은 언제던지 연락 주시거나 상담예약 남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https://대구개인회생.net
상담센터 : 1844-0755

[ 개인회생 내용 ]
이름 : 김OO
연령대 : 60대 초반
직업 : 개인택시 기사 (운전 17년차, 개인택시 면허 9년차)
월수입 : 2,200,000원
가족관계 : 배우자와 2인 가구 (자녀 결혼 후 분가)
부양가족 : 배우자, 어머니 요양원 보조
채무금액 : 원금 68,000,000원
청산가치 : 9,000,000원
변제금액 : 26,000,000원
월변제금(가용소득) : 430,000원
변제기간 : 60개월
변제율 : 원금의 38.2% 상당액
특이사항 : 코로나 매출 급감 + 자녀 결혼 자금 보조 1,500만 + 차량 할부 + 어머니 요양원 보조 → 1년 반 카드 누적, 개인택시 면허 영업 필수 자산으로 처분 제외 인정
채무발생원인 :
가계부 열두 페이지로 정리한 개인택시 6,800만 원 회생 — 어떤 60대 운전기사의 기록
가계부를 처음 펼친 날
저는 60대 초반의 개인택시 기사입니다.
택시를 운전한 지 올해로 17년째이고 개인택시 면허를 받은 지는 9년째입니다.
작년 가을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집사람이 저녁 식탁에서 통장 한 권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이번 달 카드값을 못 갚았다는 안내가 왔어요.”
저는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방 한쪽 책상에 앉아 작은 노트를 한 권 꺼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매달의 가계부를 한 페이지씩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그 가계부 열두 페이지의 기록입니다.
매달의 가계부 한 페이지에 작은 사건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그 작은 사건들이 모여 6,800만 원이라는 빚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첫 페이지 — 작년 1월, “월 220만으로 250만을 썼다”
가계부 첫 페이지는 작년 1월입니다.
그 달 저의 택시 순수입은 약 220만 원이었습니다.
같은 달 가계 지출은 약 250만 원이었습니다.
월세 60만 원, 보험료 18만 원, 식비 50만 원, 휴대폰 두 대 12만 원, 관리비 18만 원, 차량 LPG 35만 원, 어머니 요양원 입원비 보조 20만 원, 잡비 약 37만 원.
수입에서 지출을 빼면 마이너스 30만 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30만 원을 본인 신용카드로 막았습니다.
“한 달만 막으면 다음 달은 손님이 좀 늘 거다.”
그날 가계부 끝에 작게 적었습니다.
그 작은 한 줄이 사건의 출발점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미 그 시점에 가용 가계는 적자였고 저는 그 신호를 읽지 못한 채 카드로 그 차이를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페이지 — 작년 3월, 자녀의 청첩장이 오던 달
3월의 가계부에는 큰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딸 결혼식 — 4월 둘째 주.”
청첩장이 도착한 날이었습니다.
딸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이였고 큰 욕심 없이 작게 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마음으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가계부 다음 줄에 쓴 숫자가 문제였습니다.
“결혼 자금 보태기 — 1,500만 원.”
집을 마련하는 데 보태라고 자녀에게 보내드린 금액입니다.
그달 저의 통장 잔고는 약 400만 원이었습니다.
부족한 1,100만 원은 저축은행 신용대출과 본인 카드 현금서비스로 마련했습니다.
가계부 그 달 페이지 끝에 작게 적었습니다.
“부모로서의 도리는 다했다. 갚을 길은 천천히 생각하자.”
그 한 줄이 저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부모로서의 도리는 다했지만 갚을 길은 다음 달부터 1년 반 동안 점점 좁아졌습니다.

여섯 번째 페이지 — 작년 6월, 카드사 전화가 처음 오던 달
6월의 가계부에는 굵은 글씨로 한 줄이 적혀 있습니다.
“오늘 카드사에서 처음 전화가 왔다.”
오전 11시였습니다.
택시에서 손님 모시고 가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차를 잠시 갓길에 세웠습니다.
“고객님, 5월 결제일 카드값이 미납되셨습니다. 오늘까지 입금이 안 되시면 연체 처리됩니다.”
저는 그날 저녁 가계부 페이지에 그 통화 시간을 적었습니다.
“6월 14일, 오전 11시 17분. 첫 카드사 전화.”
그날 이후 매일 한두 통씩 전화가 늘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카드사 한 곳이었고 다음 달은 두 곳, 그 다음 달은 네 곳이었습니다.
택시 운전 중에 휴대폰이 떨릴 때마다 저는 신호 대기 중에 손바닥에 땀이 났습니다.
그 무렵 저의 카드 빚은 약 3,200만 원, 신용대출이 약 2,400만 원이었고 거기에 차량 할부 잔여금이 약 1,200만 원이었습니다.
합치면 6,800만 원.
가계부 그달 페이지 끝에 작게 적었습니다.
“이 정도면 혼자서는 못 풀 것 같다.”
아홉 번째 페이지 — 작년 8월,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간 날
8월의 가계부에는 그 달의 큰 사건이 한 줄로 적혀 있습니다.
“8월 21일, 수성구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 첫 상담.”
그날 저는 오전 영업을 일찍 마치고 오후 2시 예약으로 사무실에 들어섰습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은 깔끔하고 조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는 사실 부끄러웠습니다.
17년을 운전해 온 사람이 빚 6,800만 원으로 법무사 사무실을 찾는다는 게 말입니다.
자리에 앉아 망설이며 말씀드렸습니다.
“개인택시 기사인데 카드 빚이 6,800만 원 정도 됩니다. 이 정도면 회생이 가능합니까?”
법무사님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천천히 적기 시작하셨습니다.
“개인택시 사납금 없이 본인 순수입으로 잡으면 월 220만 원, 가계 부양가족과 차량 영업용 비용을 빼면 가용소득이 약 43만 원입니다. 5년 변제하시면 약 2,600만 원, 변제율 38% 정도 나옵니다.”
저는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가계부에 매달 적어 온 숫자가 법무사 종이 위에서 변제계획안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법무사님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개인택시 면허는 영업에 필수이니 처분 대상이 아닙니다. 차량은 잔존가치만 청산가치에 반영합니다. 면허는 유지하시면서 진행 가능합니다.”
이 한 마디가 저에게는 가장 큰 안도였습니다.
택시 면허만 지킬 수 있다면 5년 동안 일하면서 갚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날 저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열한 번째 페이지 — 신청서 접수와 첫 개시결정
가계부 11월 페이지에는 한 줄이 굵게 적혀 있습니다.
“11월 7일, 신청서 접수.”
법무사 사무실에서 작성한 신청서가 전자소송 시스템으로 대구지방법원에 접수되었습니다.
신청서에 첨부된 자료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카드 명세서 24개월치 (다섯 장)
· 신용대출 계약서 (세 곳)
· 차량 등록증과 할부 계약서
· 개인택시 면허증 사본
· 택시 운행 일지 12개월치 (실수입 입증)
· 어머니 요양원 입원비 영수증 12개월치
· 12개월치 통장 거래내역
· 자녀 결혼 자금 송금 내역 (가족 부양 입증)
법무사님이 작성을 마치시고 신청서 사본을 건네신 날, 저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그 종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가계부 열한 페이지의 숫자가 그 신청서의 한 줄 한 줄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12월 중순 대구지방법원에서 개시결정이 났습니다.
개시결정이 났다는 건 법원이 사건을 회생 절차로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그 결정문을 받은 날 저는 가계부에 짧게 적었습니다.
“12월 19일 — 카드사 전화가 멈춘 날.”
실제로 그날 이후 카드사에서 오던 전화가 거짓말처럼 끊겼습니다.
법적으로 추심이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택시 운전 중에 휴대폰이 떨려도 더 이상 손바닥에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열두 번째 페이지 — 인가 후 첫 가계부, 그리고 지금
올해 4월에 변제계획 인가 결정문이 도착했습니다.
총 채무 6,800만 원, 청산가치 약 900만 원, 총 변제액 약 2,600만 원, 월 변제금 약 43만 원, 변제 기간 60개월, 변제율 약 38.2%.
봉투를 뜯고 거실 식탁에 앉아 한참을 보았습니다.
집사람이 옆에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이제 끝이 보이네요.”
저는 작은 노트를 한 권 꺼내 새 가계부를 시작했습니다.
5월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월 수입 약 220만 원, 월 변제금 43만 원, 가계 지출 약 170만 원, 잔여 7만 원.
처음으로 잔여가 마이너스가 아닌 가계부 페이지였습니다.
7만 원이지만 저에게는 17년 만에 처음 본 진짜 흑자였습니다.
5월 페이지 끝에 작게 적었습니다.
“잘 살아갈 수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길어 보이지만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적어 온 가계부와 비교하면 훨씬 가볍습니다.
매달 정해진 43만 원만 갚으면 나머지는 제 인생으로 돌아옵니다.
택시 운전대 잡고 도로를 달릴 때 라디오 소리가 처음으로 가벼워졌습니다.
가계부를 적어 오신 분께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 중에 작은 노트에 가계부를 적어 오신 분이 계실 겁니다.
한 달 두 달 적다가 적자가 보이면 본인 카드로 메우신 분도 계실 겁니다.
저는 그 적자가 30만 원에서 시작해 6,800만 원이 되기까지 1년 반이 걸렸습니다.
가계부 한 페이지의 적자가 큰 빚이 되는 데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 걸립니다.
만약 본인 명의 카드로 가계 적자를 메우기 시작하셨다면 그 시점이 이미 위험 신호입니다.
가계부의 한 페이지가 두 페이지가 되고 세 페이지가 되기 전에 한 번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셔야 합니다.
대구에서 개인회생 절차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김재현 법무사 사무실의 무료 상담은 큰 부담 없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가계부 한 페이지의 적자를 5년 동안 키우지 마시고 그 시점에 한 번 전화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17년 운전하던 사람이 6,800만 원의 빚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결심 덕분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인회생 개인파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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